Home > 자료실 > 전통자료실 > 족보상식

보학의 기원과 발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5-13 16:05 조회3,794회 댓글0건

본문

 보학의 기원과 발전
 
                                                                                                                                                              - 출처 : 백과사전 -
 
보학
 
보학은 여러 가문(家門)의 보계(譜系:系圖)에 관한 학문으로써 주(周)나라( BC1046~BC256)때부터 시작되었으며 당시는 이를 위한 전관(專官)이 있었다. 한(漢)나라(BC206~AD220) 때에 이르러 사마 천(司馬遷)은 3대세표(三代世表)를 만들어 씨족의 연원을 밝혔으나 반고(班固:後漢의 史學者) 이후의 보계는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한의 등씨(鄧氏)가 지은 관보(官譜), 응소(應邵)가 지은 씨족(氏族) 1편, 왕부(王符)가 지은 《잠부론(潛夫論)》에 성씨(姓氏) 1편 등이 뒤를 이었으며, 위(魏) ·진(晋) 육조연간에는 가보(家譜:족보)를 만드는 일이 성행하였다. 진(晋)나라 가필(賈弼)의 성씨부상(姓氏簿狀), 왕굉(王宏)의 백가보(百家譜), 송나라 하승천(河承天)의 성원(姓苑) 2편, 유담(劉湛)의 백가보, 당나라 임보(林寶)의 원화성찬(元和姓纂) 등 많은 저작이 있다.
 
 
 
한국의 보학은 송 ·원대에 그곳의 족보를 모방하기 시작한 것이 효시로 보이며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에 의하면 1562년(명종17)에 간행된 《문화류보(文化柳譜)》가 최초라 하였으나 이보다 앞선 고려시대에도 거가귀족(巨家貴族) 사이에는 계보를 기록보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씨족 ·벌족별로 많은 족보가 만들어졌으며 이들 족보 전반에 걸친 계보서로 《청구씨보(靑丘氏譜)》 《잠영보(簪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이 있으며, 또 국가 ·사회의 현달(顯達) ·귀현(貴賢)의 세계(世系)를 명백히 하려고 한 보서(譜書)로 《문보(文譜)》 《삼반십세보(三班十世譜)》 《진신오세보(縉紳五世譜)》 《호보(號譜)》 등이 있다
 
 
 
■ 보학의 기원과 발전
 
족보(族譜)는 보첩(譜牒)이라고도 하며 3~5세기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계통을 수록한 것이었으며, 개인적인 보첩(譜牒)을 갖게 된 것은 한(漢)나라 때 관직 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를 시행하면서 과거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이다. 특히 중국 북송(北宋)의 대문장가인 삼소(三蘇ㆍ蘇洵과 두 아들 蘇軾, 蘇轍)에 의하여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 편찬의 표본이 되었다.
 

현판.jpg

팔고조도.jpg

성화보.jpg

가정보1.jpg

가정보.jpg

 ▲ 조선 왕실 족보인 선원록(璿源錄)과 편찬 관청인 선원록아문(璿源錄衙門)의 현판.
 
 
우리 나라의 족보(族譜)는 중국의 성씨제도(姓氏制度)라 할 수 있는 한식씨족제도(漢式氏族制度)를 근본으로 삼고 발전하여 정착했는데, 그 시기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등 옛 문헌에 보면 고구려(高句麗)나 백제(百濟) 계통의 성(姓)은 그 계보(系譜)가 후대와 거의 연계되고 있지 않으며, 다만 신라(新羅)의 종성(宗姓)과 육성(六姓)인 이(李)ㆍ최(崔)ㆍ정(鄭)ㆍ설(薛)ㆍ손(孫)ㆍ배(裵) 및 가락국계(駕洛國系)의 김해 김씨(金海金氏)만이 후대의 계보(系譜)와 연결됨에서 알 수 있다.
그 이후로부터는 귀족 사이에서 가첩(家牒)이나 사보(私報)로 기록하여 왔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중기에 오면서 족보(族譜)의 형태를 갖추는 가승(家乘)ㆍ내외보(內外譜)ㆍ팔고조도(八高祖圖)로 발전하게 된다.
 

 ▲ 밀성 박씨(密城朴氏) 집안의 계보를 적은 족보인 가첩(家牒).
 

 ▲ 밀성 박씨 도평의사공파(密城朴氏都評議事公派)의 가첩(家牒).
 
 
 ▲ 밀성 박씨 집안의 사대(四代)까지의 조부·조모·외조부·외조모를 계통적으로 배열한 팔고조도(八高祖圖).
 
 
우리 나라의 족보는 고려 제18대 의종(毅宗ㆍ재위 1146~1170) 때 김관의(金寬毅)가 작성한 ‘왕대종록(王代宗錄)’과 임경숙(任景肅)이 작성한 ‘선원록(璿源錄)’이 처음이며, 이것은 고려왕실 혈족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고려 때에도 귀족은 그 씨족의 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고, 관제(官制)로서도 종부시(宗簿寺)에서 종족의 보첩(譜牒)을 관장했다는 사실로 보아 당시의 귀족 사이에는 보계(譜系)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나라의 한 가문에서 최초로 간행된 족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세종 5년 (1423년) 양도공(良度公) 류영(柳穎)이 발간한 ‘문화류씨영락보(文化柳氏永樂譜)’로 서문만 전할 뿐 현존하지 않으며, 이 ‘영락보(永樂譜)’가 과연 간행본인지 혹은 필사(筆寫)에 그치는 정도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후 성종 7년(1476년) 우찬성(右贊成) 권제(權?)와 권람(權擥) 부자(父子)에 의하여 체계적인 족보의 형태를 갖춘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가 간행되었는데, 현존 최고(最古)의 족보로서 서울대학교 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에 소장되어 있다.
 
 ▲ 현존 최고(最古)의 족보인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
 
 
명종 17년(1562년) 류희잠(柳希潛)이 편찬한 문화 류씨(文化柳氏) 두 번째의 족보인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는 원본(10권)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되어 있으며, 이 밖에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족보는 남양 홍씨(南陽洪氏ㆍ1454년)ㆍ전의 이씨(全義李氏ㆍ1476년)ㆍ여흥 민씨(驪興閔氏ㆍ1478년)ㆍ창녕성씨(昌寧成氏ㆍ1493년) 등의 족보가 있다.
 
 

 ▲ 1980년 성화보(成化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가장 오래된 족보였던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
 
 

 ▲ 외손까지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
 
 
조선 초기의 족보를 보면 친손(親孫)과 외손(外孫)의 차별이 없이 모두 수록하고 있으며, 선남후녀(先男後女)에 관계없이 연령순위로 기재하고 있다. 또한 간행된 시기와 수보(修譜) 간격을 보면 조선 초기에는 130~200년의 간격을 두었고, 조선 중기는 50~60년, 조선 후기는 20~30년으로 그 간격이 점점 좁아졌다. 그것은 아직도 조선 초기에는 동족집단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또는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그 동족의식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족보는 조선 후기를 거쳐 현대로 오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한마디로 가문숭상(家門崇尙)의 사회적 풍토로 인한 천민과 양반 사이의 신분이 엄격했던 조선 초기와는 달리 본인과 후손의 사회적 신분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증표의 구실로 뚜렷한 고증도 없이 미화하거나 과장, 조작하여 간행하는 일들이 많았다.
특히 1909년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누구나 성(姓)과 본(本)을 가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족보를 사고 팔거나 훔치는 일이 있어 동족(同族) 및 상호의 혈연적 친근원소(親近遠疎)의 관계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발행한 ‘조선의 취락(朝鮮の聚落)’ 후편에 의하면, 그 당시 조선에 있어서의 조선인 발행의 단행본의 출판허가 건수는 1933년에는 861건, 1934년에는 1,090건이었는데, 족보의 발행 건수는 1932년에 137건, 1933년에는 151건에 달하여 족보의 발행이 항상 수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 1754년 간행된 김해 김씨 최초 족보인 갑술보((甲戌譜).
 
10년(1823~1932) 사이의 족보 발행 회수를 각 본관ㆍ성씨별로 따져 본다면,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112회로서 수위를 차지하며,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88회, 경주 김씨(慶州金氏)가 69회, 전주 이씨(全州李氏)가 68회,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55회, 호산 신씨(乎山申氏ㆍ平山申氏)가 42회, 광산 김씨(光山金氏)가38회, 안동권씨(安東權氏)가 34회, 수원 백씨(水原白氏)가 27회의 순위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인쇄에 의한 간행 이외에도 필사 또는 등사본(謄寫本) 등의 유포가 적지 않았을 것을 고려할 때, 당시 얼마나 족보 발행이 성행했던 가를 짐작할 수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