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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구(李夢龜) 임진왜란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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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진 작성일20-03-18 11:23 조회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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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구(李夢龜)

 

 

본관은 공주(公州). 공주이씨 공숙공파 46세손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무신.

 

자는 상서(祥瑞서백(瑞伯), 호는 석계(石溪). 공산부원군(公山府院君문무공(文武公이천일(李天一)의 후손이다증조할아버지는 이공필(李公弼)로 통정대부 철산부사(通政大夫鐵山府使)를 지냈으며할아버지는 이교(李嶠)로 맹산· 익산· 화순 현감을 지내고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아버지는 이시준(李時俊)으로 통정대부 이조참의(通政大夫吏曹參議를 지냈다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경주 이씨이다부인은 진양 정씨이며슬하에 1남이 있다.

 

이몽구(李夢龜)는 1554(명종 9) 태어나 어려서부터 무예를 좋아하고 병서를 즐겨읽어 집안 어른들이 이 아이는 반드시 무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1583(선조 16) 무과에 급제하고, 1591(선조 24) 전라좌수영 우후(虞侯)로 전임되었다이듬해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무공(忠武公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서 활동하였다옥포해전을 필두로 당항포율포해전에서 전공을 세워 훈련원 첨정에 제수되었다다시 한산대첩에서 승리하고 다음해 안골포 해전에서 승리하는 등 이몽구는 매 전투마다 탁월한 전공을 세워 이순신이 그를 매우 신뢰하였다충무공의 장계와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의하면 "신이 홀로 이십삼척을 거느리고 우후 이몽구와 함께 대승을 거뒀다(臣獨領二十三隻與虞候李夢龜率領大勝)"라 하였으며조선왕조실록에도 이몽구에 대한 사적이 기재되어 있다그러나 1597(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남해 노량만(露梁灣)에서 왜적을 추격하던 중 전사하였다.

 

이순신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나의 수족(手足)을 잃었다.”라고 슬픔을 토로한 기록이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임진록(壬辰錄)』 등에 보인다.1605(선조38) 선무 원종 공신 2등에 책록되고2품 가선대부에 추증되었다.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후손들이 세운 이몽구 신도비가 있으며비에는 임란공신 증 가선대부 삼도수군통제사 우후 공주 이공 휘 몽구 신도비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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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夢龜 선조의 恩德에 讚辭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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